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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전용서체 | 숲을 글자로 옮기는 방법 — 유한킴벌리 푸른숲체 개발기

유한킴벌리 푸른숲체

42년을 이어온 이름을 글자로 받는다는 것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는 1984년에 시작됐습니다. 42년입니다. 이 정도 시간을 견딘 캠페인은 더 이상 광고 문구가 아니라 사회의 공용어에 가깝습니다.

폰트릭스가 유한킴벌리로부터 이 캠페인의 전용 서체 개발을 의뢰받았을 때, 가장 먼저 정리해야 했던 건 조형이 아니라 범위였습니다. 42년의 무게를 서체가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캠페인이 이미 해냈습니다. 서체가 할 일은 그 무게를 오늘의 화면과 지면 위에서 다시 읽히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목표를 이렇게 좁혔습니다.

숲을 설명하지 않고, 숲을 닮은 리듬을 만든다.

출발점은 'ㅇ'이었습니다

푸른숲체의 조형은 정원형(正圓)의 'ㅇ' 에서 시작합니다.

이건 얼핏 모순처럼 보입니다. 완벽한 원은 사람 손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는 형태입니다. 자를 대고 그린 기하학의 언어죠. 그런데 저희는 이 서체를 '자연스러운 손글씨 형태'로 잡고 있었습니다.

의도된 모순이었습니다. 정원형 'ㅇ'은 이 서체의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나머지 자소들이 손글씨의 곡선을 따라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건, 매 글자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ㅇ'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한글에서 'ㅇ'은 초성과 종성 양쪽에 가장 자주 나타나는 자소입니다. 그 자리가 단단하면 문장 전체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손으로 쓴 듯한 인상은 손으로 쓴 것처럼 만들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어디를 풀고 어디를 조일지 정하는 데서 나옵니다.

 

속공간을 열고, 중심선을 올렸습니다

푸른숲체의 인상을 결정하는 두 번째 조정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글자 안쪽 공간을 시원하게 넓혔습니다. 속공간이 좁은 서체는 아무리 곡선을 부드럽게 다듬어도 답답한 인상을 벗지 못합니다. 반대로 속공간이 열리면 같은 굵기에서도 글자가 밝아집니다. '생기 있는 인상'이라는 목표는 곡선이 아니라 여기서 만들어졌습니다.

글자들의 중심선을 위쪽으로 맞췄습니다. 활자는 보통 중심선을 가지런히 정렬합니다. 정확하지만 정적입니다. 중심선을 살짝 위로 올리면 글자들이 미세하게 들뜨면서, 한 줄로 늘어놨을 때 손글씨 특유의 리듬이 생깁니다.

이 두 가지가 푸른숲체의 성격을 만든 조정입니다. 자소 하나하나의 모양보다 먼저 결정된 사항이었습니다.

자소마다 역할을 나눴습니다

전부 둥글게 굴리면 서체는 흐물흐물해집니다. 친근함을 얻는 대신 신뢰를 잃죠. 42년 된 공익 캠페인의 서체가 가벼워 보이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자소마다 담당을 나눴습니다.

곡선을 담당하는 자소 — 'ㅋ'과 'ㅅ'은 곡선의 맛을 충분히 살렸습니다. 이 자소들이 서체 전체의 부드러운 인상을 끌고 갑니다.

온기를 담당하는 자소 — 'ㄴ'과 'ㅁ'은 모서리를 둥글게 굴렸습니다. 각진 모서리 하나가 남아 있으면 문장 전체가 차가워집니다.

중심을 담당하는 자소 — 'ㅈ'은 단단하게 무게중심을 잡고, 'ㅍ'은 좌우 대칭을 정확히 맞췄습니다. 이 두 자소가 나머지의 자유로움을 지탱합니다.

부드러운 자소와 단단한 자소를 같은 굵기 안에서 공존시키는 일이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간 구간이었습니다.

 

획이 만나는 자리에 곡률을 넣었습니다

획이 꺾이거나 다른 획과 만나는 지점에 미세한 곡률을 적용했습니다. 나뭇가지가 갈라져 뻗어나가는 마감입니다.

이게 앞서 말한 "숲을 그리지 않기로 한" 결정의 실행 방식입니다. 잎사귀도 나무도 그리지 않았지만, 획이 뻗어나가는 방식 자체가 숲의 생명력을 담습니다. 읽는 사람이 의식하지 못한 채 온기를 느끼면 성공입니다. "여기 나뭇가지가 있네"라고 알아채는 순간 실패고요.

 

마지막 관문은 실용성이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조형이 아니라 균형이었습니다.

전용 서체는 개성을 위해 만들어지지만, 실제로는 극단적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초소형 제품 패키지의 표기부터 모바일 UI, 대형 옥외광고와 팝업스토어 슈퍼그래픽까지. 개성이 강할수록 이 스펙트럼을 통과하기 어려워집니다.

글자의 형태와 비례, 자간을 반복해서 조율했습니다. 손글씨의 리듬감은 유지하되 가독성은 놓치지 않는 지점을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Light, Medium, Bold 3종의 위계로 정리했고, 각 굵기마다 한글 2,780자를 확보했습니다. 여기에 영문 94자, 약물 986자를 더해 실무에서 문장부호나 기호 때문에 다른 서체를 섞어 쓰는 일이 없도록 구성했습니다.

3종 굵기를 만들 때 특히 신경 쓴 건 곡률의 일관성입니다. Light에서 자연스러웠던 곡선 마감이 Bold에서는 뭉개지기 쉽습니다. 굵기가 달라져도 같은 서체로 읽히도록 각 웨이트의 곡률을 개별적으로 재설계했습니다.

 

 

시스템 안의 서체

푸른숲체는 단독으로 개발된 서체가 아닙니다. 유한킴벌리가 42주년을 맞아 BI와 캐릭터, 서체를 동시에 리뉴얼하는 통합 프로젝트의 한 축이었습니다.

새 BI는 기계적인 선을 배제하고 손으로 그린 듯한 곡선으로 '휴먼 터치'를 구현했습니다. 푸른숲체가 정원형 'ㅇ'이라는 기하학적 기준 위에 손글씨의 곡선을 얹은 것과 같은 방향입니다. 서체가 로고를 따라 그린 게 아니라, 같은 원칙에서 각자의 답을 낸 결과입니다. 이 편이 시스템으로서 더 오래 갑니다.

유한킴벌리 측에서는 브랜드의 상징성과 실용성 사이의 균형을 가장 고심한 지점으로 꼽았습니다. 저희가 개발 내내 붙들고 있던 문제와 정확히 같았습니다. 클라이언트와 개발사가 같은 문제를 보고 있으면 프로젝트는 대체로 잘 끝납니다.

그리고, 무료로 공개됐습니다

기업 전용 서체는 대개 그 기업 안에서만 쓰이고 끝납니다. 푸른숲체는 다릅니다. 2026년 6월, 별도 허가 절차 없이 누구나 내려받아 쓸 수 있도록 공개됐습니다.

서체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 결정이 반가운 이유가 있습니다. 서체는 쓰여야 완성됩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캐비닛 안에 있으면 그저 파일입니다. 푸른숲체가 유한킴벌리의 지면을 넘어 학교 게시물과 개인 작업물, 작은 브랜드의 패키지 위에서 읽히게 될 때, 이 서체가 담으려 했던 생기와 온기도 그만큼 넓게 퍼집니다.

숲은 한 그루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젝트 정보

항목내용
클라이언트 유한킴벌리
프로젝트명 유한킴벌리 푸른숲체
분류 정원 스타일 민부리(고딕) 서체
스펙 한글 2,780자 / 영문 94자 / 약물 986자
굵기 Light, Medium, Bold (3종)
개발 연도 2026

기획·아트디렉션 유한킴벌리 브랜드 디자인 & 이노베이션본부 (장예종 본부장, 김해인 시니어 디자이너)

서체 개발 폰트릭스 디자인 (박용락 대표·디자인 디렉터) 폰트릭스 참여 디자이너 김정진


폰트릭스는 기업 전용 서체 개발과 릭스폰트(RixFont) 서비스를 운영하는 서체 디자인 전문 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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